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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2일 주일설교(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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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VisionChurch
댓글 0건 조회 1,374회 작성일 23-02-12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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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관우 목사
설교본문 여호수아 4장 4-7절
설교날짜 2023-02-12

인생의 성공(5)

기념비를 세우라

    수 4:4-7

오늘 본문은 아직 요단강을 건너고 있을 때 벌어졌던 일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아직 요단강 한가운데 서 있고, 노약자를 비롯한 모든 백성들은 강을 다 건넜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런 명령을 내리십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곳에서 돌 열 둘을 택하여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밤 너희가 유숙할 그 곳에 두게 하라 하시니라”(수 4:3)

하나님은 왜 요단강 한 가운데서 열두 개의 돌덩이를 가져오라고 하셨을까요?


1. 믿음의 대(代)를 이어가라.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준비한 그 열두 사람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요단 가운데로 들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궤 앞으로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대로 각기 돌 한 개씩 가져다가 어깨에 메라”(수 4:4,5)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죠.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 자손이 물어 가로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뇨 하거든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었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영한 기념이 되리라 하라”(수 4:6-7)

지금 누구를 위해 그 무거운 돌덩이들을 요단강 한 가운데서 가져오고 있나요?

그렇습니다. 훗날 자녀들이 “아버지 이 돌들은 뭐예요?”라고 물어볼 때, “이 돌들은 원래 저 강 한가운데 있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물길을 멈추게 하신 뒤 우리를 무사히 건너게 하셨어. 그때 이 큰 돌을 강 한가운데서 가져온 거야”

이렇게 훗날 후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지금 그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강 한가운데 돌들을 캐내는 일이 쉬웠겠습니까?


이 대목에서 우리는, 신앙의 대를 이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보게 됩니다. 

여러분도 힘드시죠! 

이곳에 있는 모든 부모의 기도 제목이 이것일 것입니다. “우리 가문이 믿음의 대를 이어가는 가문되게 해주세요” “우리 아들과 딸이 다시 신앙회복하게 해주세요”

부모인 우리는 왜 그렇게 날마다 자식들의 신앙을 위해 기도하나요?

부모인 우리는 알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 믿으며 사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이고, 가장 큰 성공이라는 것을!

이에 우리는 자식들을 위한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식을 포기하는 부모는 없으니까요!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눈물의 기도를 하나님이 꼭 들어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은 어떻게 자녀들을 믿음으로 이끌 수 있는지에 대한 지혜를 줍니다. 

어떻게 해야 내 신앙을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오늘 말씀처럼 우리 자녀들에게 요단강을 건너게 하셨던 ‘증거물’을, ‘돌덩이’을 보여주면 됩니다. 

오늘날은 어떤 시대인가요? 도마처럼 보지 않고는 믿지 않는 시대죠!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요 20:25)

이 세대는 도마처럼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 시대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여주면 되고 만지게 해주면 됩니다. 이렇게요!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


자녀들이 교회 안 다닌다고, 신앙을 잃어버렸다고 야단치지도 마십시오. 

어릴 때는 윽박질러서라도 교회에 데리고 오지만, 머리가 굵어지면 그게 가능하던가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백문이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말처럼, 보여주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은 그 바쁜 와중에 잠시 길을 멈춰 세운 뒤, “요단강 한 가운데서 돌 들을 빼오라”고 명령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여러분의 후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습니까?

오늘 여러분은 여러분의 후손들에게 어떤 돌덩이를 만지게 해주시겠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은 요단강에서 빼내 온 돌덩이들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만져 보았기에, 나라를 잃어버리고 2천년 동안이나 정처 없이 전 세계를 떠돌아다녔지만, 하나님을 향한 믿음만큼은 빼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교회에 속한 모든 가문도 이스라엘처럼 수십년, 수백년, 수천년,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믿음의 대를 이어가는 복된 가문 되시기 바랍니다.

“보여줍시다” “들려줍시다”


2. 믿음의 공동체를 세우라. 

그렇게 요단강에서 열두 덩이의 돌들을 캐서 가져가게 되는데, 이 돌들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였을까요?


“첫째 달 십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 여리고 동쪽 경계 길갈에 진 치매”(수 4:19)

요단강에서 길갈까지 짊어지고 가고 있는데, 그 거리가 약 14킬로미터(8.7마일)나 됩니다.

자동차로 가면 10분 안에 갈 수 있는 거리이지만, 큰 돌을 등에 짊어지고 간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쉽지 않은 일이죠!


여호수아는 왜 각 지파들에게 무거운 돌덩이를 등에 짊어지고 ‘길갈’까지 오게 한 것일까요? 그 이유가 다음 구절에 나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 가로되 후일에 너희 자손이 그 아비에게 묻기를 이 돌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희는 자손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수 4:21,22)

이 말씀은 앞에서 했던 말씀과 같죠. 

여기에 다른 내용이 덧붙여집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수 4:23,24)


이 말씀속에 두 번째 목적이 숨겨져 있습니다. 

각기 다른 성향을 가진 열 두 지파가 똘똘 뭉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이스라엘 열 두 지파는 아버지는 같지만, 어머니는 다 다르죠. 


한 아버지,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자매간에도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보십시오. 어머니가 다 다르죠. 

심지어 이 가운데는 어린 나이에 형들에게 노예로 팔려간 아들도 있네요. 

쉽지 않은 가계도입니다. 이런 집안이 하나로 뭉쳐질 수 있을까요?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똘똘 뭉쳐 있습니다. 

그래서 주변국들이 이스라엘을 함부로 건들지 못하죠. 왜요?

이스라엘은 반드시 보복하는 나라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아이히만’ 사건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이스라엘은 팔레스틴에 국가를 세우게 되고, 국가를 세운 뒤 제일 먼저 했던 일은 600만명이나 되는 동포를 가스실로 밀어넣었던 총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아돌프 아히히만’은 독일이 항복하자 가족들을 데리고 아르헨티나로 망명합니다. 

이름까지 ‘리카르도 클레멘트’로 바꾼채,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죠. 

그러나 1960년, 이스라엘 첩보국 ‘모사드’그 그를 찾아냅니다. 

그리고 그를 비행기에 태워서 이스라엘로 잡아와서 재판대에 세웁니다. 


이스라엘이 어떤 나라인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입니다. 

작지만 하나로 똘똘 뭉쳐 있음을 전 세계에 보여줬죠. 


무엇이 어머니가 다른 12지파를 이렇게 강한 유대감으로 하나되게 만들었을까요?

앞에서 본 말씀 속에 답이 있습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수 4:23,24)

홍해를 함께 건넜던 경험, 요단강을 건넜던 그 경험이, 12지파를 하나로 만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민족의 단결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고난의 시간을 함께 해야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은 열 두 지파에게 각각 돌덩이 하나씩 등에 짊어지고 요단강에서 길갈까지 14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행진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돌들로 기념비를 세우죠.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하라”(수 4:7)


또 그곳에서 할례를 행합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수 5:2)

왜요? 광야에서 태어난 남자들은 아직 할례를 받지 못했으니까요. 


그리고 그곳에서 함께 유월절을 지키죠. 

“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수 5:10)


이 대목에서 우리는 어떻게 단단한 공동체를 세워갈 수 있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이렇게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피땀 흘리고, 함께 유월절 음식을 나누먹었던 경험들이 오늘날과 같이 단단한 나라를 이루는 초석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랬기에 바위처럼 단단한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교회도 그런 교회 되길 소망합니다. 

지금까지 40여년 동안 희노애락을 함께 공유하며 여기까지 오신 형제자매 여러분, 앞으로도 계속해서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면서, 하나 된 모습으로 공동체를 이뤄가는 우리 교회되길 소망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마음을 합하고 힘을 합해야 합니다. 

방관자의 모습이 아니라, 관중석이 아니라 경기장에서 함께 뛰어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말이 있죠.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함께 따라서 하실까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니다” “뭉칩시다”


그렇게 믿음의 대를 이어가고, 단단한 믿음의 공동체가 되어가야 하는데, 무엇으로 이것이 가능할까요? 


3. 반석 위에 서라. 

이스라엘 열 두 지파에서, 열 두 명의 남자들이 열 두 돌덩이를 캐내오고 있는데, 그리고 그것을 길갈까지 짊어져서 가져오고 있는데, 이 돌덩이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오늘 말씀을 신약의 말씀으로 재해석하면, 열두 돌덩이는 우리가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우리 가정과 공동체가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서야 함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인생이 둘 중 하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래위에 세우거나 반석 위에 세우거나. 


바울도 이렇게 권면합니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 3:11)

우리 인생이나 가정이나 공동체를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가야 한다는 거죠. 

그러면 왜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야 할까요? 

그날이 오면 이렇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고전 3:12,13)

바라기는 여기 계신 모든분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위에 인생을 세워가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반석위에 세워갑시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보죠. 

그러면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니”(마 7:24)

반석위에 세운 자는 어떤 자인가요?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가 반석위에 세우는 자입니다. 

반대로 모래 위에 세운 자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자람 같으니”(마 7:26).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입니다. 


후손들이 믿음의 대를 이어가게 하고 싶으십니까? 믿음의 공동체를 세워가고 싶으십니까?

이것이 답입니다. 

앞에서 “보여주면 된다”고 했는데, 지금 이스라엘 후손들이 아버지가 건져온 요단강의 바위들을 두 눈으로 보고 두 손으로 만지고 있는 것처럼, 우리 자녀들에게 보게 해주고 만져보게 해주면 됩니다. 

먼저 믿는 우리가 모래 위가 아니라 바위 위에 집을 세워가고 있음을 보여주면 됩니다. 

위기 때마다 함께 기도하며, 함께 홍해를 건너고, 또 함께 돌덩이를 짊어지며 ‘으쌰으쌰’하면서 요단강을 건너는 모습을 보여주면 됩니다. 

그러면서 기념비를 하나씩 세워가는 것입니다.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하라”(수 4:7)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홍해를 건넜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요단강을 건넜다”


바라기는 오늘 길갈의 경험이 우리의 경험 되어서, 더욱 쓰임받는 가문되시길, 나아가 더욱 쓰임받는 우리 공동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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