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5월 - 구원이후(4) "구별된 삶을 살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VisionChurch 댓글 0건 조회 903회 작성일 23-04-29 05:20 목록 본문 * 사도신경* 찬송 -* 기도 - * 마음열기 1) 지난 한 달 동안 가장 감사한 일은?2)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일까요?* 성경 – 민수기 6장 2-6절 * 말씀나눔 : 구원이후(4) “구별된 삶을 살라”오늘은 민수기 6장 말씀을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오늘 본문에는 조금 생소한 단어가 하나 나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고 하면”(민 6:2). 여기서 ‘나실인’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나지르’라는 단어인데 이는 ‘구별되다’, ‘헌신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세상에 물들지 않고 자기 자신을 지키며 하나님만 섬기기로 작정한 사람들/ 구별된 사람들을 가리켜 ‘나실인’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나실인’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1. ‘나실인’은 하나님을 사랑한다. 본문 3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의 초나 독주로 된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 말지니”(민 6:3,4).나실인은 포도나무에서 나오는 것은 그 어떤 것도 마시거나 먹을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포도주로 만든 식초나 즙이나 말린 건포도나 씨도 먹을 수 없네요. 하나님은 왜 ‘포도나무에서 나온 그 어떤 것도 먹지 말라’고 나실인에게 명령하고 있는 걸까요?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포도주가 가지고 있는 의미, 다시 말해 술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들여다봐야 하는데, 창세기 9장을 보면 홍수가 끝난 뒤에 농사를 짓기 시작하는데 그때 포도주를 담궈 먹죠.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창 9:20,21)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나요? 취해서 옷도 다 벗고 장막에서 곯아떨어져 있네요. 그리고 아버지의 허물을 덮지 않고 들춘 죄로, 함의 아들 가나안은 저주를 받게 되고, 노아의 아들들은 온 세계로 흩어지게 되죠. 이때를 기점으로 부모와 자식 간의 반목이 시작되었고, 형제 사이에 싸움이 시작되었고, 세상은 갈기갈기 찢기고 나뉘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다툼과 나눔, 미움과 증오는 무엇 때문에 시작되었나요? 술(포도주)로 인해 시작됐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저주가 ‘선악과’라는 나무로부터 시작되었다면, 노아의 저주는 ‘포도나무’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이에 하나님은 나실인에게 ‘포도주’를 금하십니다. 왜요? 술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흐트러트려 마지막은 항상 좋지 않게 끝나게 하니까요.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범죄를 보십시오. ‘술’로 인해 발생하는 범죄들이 대부분입니다. 술 아니면 돈이죠. 그래서 모든 범죄영화에 항상 ‘술’이 등장합니다. 성적인 타락이 일어나는 장면에도 항상 ‘술’이 따라다닙니다. 이에 하나님은 나실인을 향해 “술을 마시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나를 흐트러뜨려서 종국에는 파멸로 이끄니까요. 나아가 오늘 본문에서 나실인이 “포도나무에서 나오는 것을 먹지 않는다”는 대목은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죠.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마 26:29) 예수님은 왜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포도주를 마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걸까요? 이 말씀 속에는 제자들을 향한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이제 최후의 만찬이 끝나면 로마 병정들에게 붙잡히게 되고, 십자가에 달리게 됩니다. 이 땅에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입니다. 이 시간이 지나면 헤어져야 합니다. 언제까지? 하늘 나라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무슨 말씀인지 감이 오시나요? 그래서 제자들도 그날부터 술을 입에 대지 않습니다. 왜요? 스승인 예수님이 천국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않으시겠다고 하는데, 제자인 우리가 어떻게 입에 포도주를 댈 수 있단 말입니까! 그래서 그때부터 제자들은 포도주를 멀리하게 되고, 이것이 기독교의 전통으로 자리 잡히게 되죠. 오늘날 기독교에서 술을 금하고 있는 것은, 율법적인 금지가 아니라 예수님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자발적인 결단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실인에 관한 규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나실인은 스스로 절제하며 포도나무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멀리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 또한 전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 때문에 그렇게 절제하며 살아가고 있는 거죠. 오늘 본문의 핵심이 이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율법과 복음의 차이입니다. 율법은 억지로 따라가게 만듭니다. 억누르고 가둡니다. 그러나 율법은 힘이 없습니다. 오래 가지 못합니다. 왜요? ‘몰래 먹은 사과가 맛있다’고,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어지니까요. 그래서 매년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포도주를 마시냐, 안 마시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속에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합니다. 한평생 주님을 사랑했던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2. ‘나실인’은 하나님만 섬긴다.나실인의 두 번째 규정이 본문 5절에 나옵니다. “그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절대로 그의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그는 거룩한즉 그의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할 것이며”(민 6:5).나실인은 머리를 자르면 안되는데, 머리를 자르지 않는 것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머리를 자르지 않는다는 것은, 내 머리 위에 나를 주관하는 다른 권위있는 존재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도 머리를 자르지 않고 상투를 올리고 그 위에 삿갓을 썼죠. 왜 그렇게 했나요? 내 머리 위에는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전적으로 부모님의 말씀과 권위에 순종한다는 의미로 머리를 자르지 않고 길렀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나실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실인은 머리를 자르지 않습니다. 왜인가요? 내 위에는 나를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나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를 하나님의 권위 아래 두겠다는 의미로 머리를 자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의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그러나 육을 입고 사는 우리가 이 말씀을 지키기가 참 힘들죠. 그 대표적인 인물이 사사기에 나오는 ‘삼손’입니다. 삼손은 나실인이었죠.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삿 13:5)그러나 그는 한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맙니다. “이 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삿 16:4) 들릴라에게 마음을 빼앗긴 결과, 어떻게 되나요?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삿 16:19). 하나님의 권위 아래 놓이기를 거부하고, 이방 여인, 들릴라의 영향력 아래 놓인채 무릎 베게나 하며 살기로 선택할 때 그에게 있던 모든 능력이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오늘날 우리 믿는 자들의 능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이 땅 미국이 기독교 국가라고 하는데, 왜 아무런 기독교의 능력도 보이지 않는 것일까요? 지금 보고 있는 이 삼손처럼, 하나님의 영향력이 아니라 점점 세상의 영향력 아래 안주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3. 나실인은 죄를 멀리한다.나실인의 세 번째 규정이 본문 6절에 나옵니다.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하지 말 것이요”(민 6:6). 나실인은 왜 시체를 만지면 안 될까요? 죽음은 죄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한마디로 나실인은 죄를 멀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나실인은 심지어 그의 부모나 형제자매의 시체도 만질 수 없었습니다. 우연히 죽은 동물의 사체를 만지는 것도 불가(不可)했습니다. 혹 그러한 일이 있었다면 온 몸의 털을 다 밀고 팔일 후에 산비둘기와 집비둘기을 잡아 정결예식을 치뤄야 했죠.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던 것일까요? 다시 반복합니다. 사망은 죄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죄는 어떻게든 우리에게 달라붙어서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에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표현했죠.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낳고, 낳고, 낳고, 낳으며 계속해서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고 있죠. 그래서 애초부터 싹을 잘라 버려야하는 것입니다. 신라 장군 김유신의 일화를 잘 아실 것입니다. 젊은 시절 김유신은 천관녀(天官女)라는 기녀(妓女)와 친하게 지냈다고 합니다. 하루는 그런 김유신을 보고 어머니가 엄하게 질책합니다. “임금을 받들고 나라를 세워야 할 자가 어찌 밤낮 천한 기생과 음탕하게 시시덕거리기만 한단 말이냐?” 이에 김유신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발걸음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맹세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술에 잔뜩 취해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깨어보니 다시 천관녀의 집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 김유신이 어떻게 하나요? 칼을 들어 단호하게 자신이 사랑하는 말의 목을 자르죠. 바울은 우리에게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 오늘 여러분을 천관녀의 문 앞까지 인도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보혈로 구속함을 입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인데,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다운 삶을 살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 무엇입니까? * 결단과 중보기도 1. 죄를 멀리하며 살겠습니다. 2.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만 섬기겠습니다. 3. 치료중에 있는 형제자매들을 돌보시고 우리 교회의 앞길을 인도해 주소서.(중보기도) * 속회 헌금 - 찬송 ________ 장* 헌금 기도 - 인도자* 광고 – 속장 * 주기도문 첨부파일 23년 5월 - 구원이후4 구별된 삶을 살라.pdf (160.7K) 2회 다운로드 | DATE : 2023-04-29 05:20:52 이전글23년 6월 - 구원이후(5) "구름 따라 불기둥 따라" 23.05.26 다음글23년 4월 - 구원이후(3) "주어진 과제와 사명을 완수하라" 23.04.01 댓글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