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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4월 - 구원이후(3) "주어진 과제와 사명을 완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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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VisionChurch
댓글 0건 조회 936회 작성일 23-04-01 10:11

본문

* 사도신경

* 찬송  -

* 기도  -                                

* 마음열기   

1) 지난 한 달 동안 가장 감사한 일은?

2) 하나님이 나를 세상에 보낸 목적이 무엇인 것 같습니까?

* 성경 – 민수기 3장 5-10절 

* 말씀나눔 : 구원이후(3) “사명과 과제를 완수하라”


심리학자 ‘아들러’는 그의 책, [미움받을 용기]에서 인간은 누구에게나 3가지 과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일, 교우, 사랑.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이 세 가지 과제를 잘 완수해가고 계십니까?

오늘 본문은 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일’과 관련된 말씀인데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빠져나왔습니다. 그 다음은요? 애굽에서 빠져나왔다는 것으로 끝일까요?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받았습니다. 그 다음은요?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으로 끝일까요? 천국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신앙의 전부일까요? 

그렇지 않죠! 구원이 전부라면, 우리가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그 순간 우리를 하늘나라로 데려가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이후에도 우리를 계속해서 이 땅에 남겨두십니다. 이 땅에서 뭔가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1. 우리에게는 각자의 사명과 과제가 있다. 

오늘 본문 민수기 3장에는 ‘레위’의 세 아들이 나옵니다. “레위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게르손과 고핫과 므라리요”(민 3:17) 첫째 ‘게르손’이 맡은 임무는 이것입니다. “게르손 자손이 회막에서 맡을 일은 성막과 장막과 그 덮개와 회막 휘장 문과 뜰의 휘장과 및 성막과 제단 사방에 있는 뜰의 휘장 문과 그 모든 것에 쓰는 줄들이니라” (민 3:25,26) 둘째 ‘고핫’의 임무는 이것입니다. “고핫 자손의 종족들은 성막 남쪽에 진을 칠 것이요 그들이 맡을 것은 증거궤와 상과 등잔대와 제단들과 성소에서 봉사하는 데 쓰는 기구들과 휘장과 그것에 쓰는 모든 것이며”(민 3: 29-31) 마지막 셋째 ‘므라리’의 임무는 이것입니다. “므라리 자손이 맡을 것은 성막의 널판과 그 띠와 그 기둥과 그 받침과 그 모든 기구와 그것에 쓰는 모든 것이며 뜰 사방 기둥과 그 받침과 그 말뚝과 그 줄들이니라”(민 3:36,37)

어떻습니까? 셋 다 ‘레위’의 아들이지만 각자의 사명과 과제가 다르죠. 한 몸에서 태어났지만, 다 다른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내 과제와 사명이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을 허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내 과제와 사명은 무엇일까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이것입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이 내 과제이고 내 사명이다”

기원전 1900년 경에 이집트의 파라오가 꿈을 꿉니다.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있는데 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 가에 올라와 그 소와 함께 나일 강 강에 서 있더니 그 흉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은지라”(창 41:1-4)

이 꿈을 해석해준 사람이 누구인가요? 우리가 잘 아는 요셉입니다. 바로의 꿈을 해석해주면서 앞으로 올 7년 동안의 흉년을 준비하라고 파라오에게 조언하죠. 이때 파라오는 요셉을 총리의 자리에 앉혀서 7년의 흉년을 준비하게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오직 그만이 파라오의 꿈을 보고, 해석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다니엘서에도 나옵니다. 바벨론 제국의 ‘느브갓네살 대왕’이 어느날 꿈을 꿉니다. 그런데 그 꿈을 아무도 해석하지 못하죠. 그때 한 청년이 그의 꿈을 단번에 풀어냅니다. 심지어 느브갓네살이 어떤 꿈을 꾸었는가도 내다보죠.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매우 찬란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그 우상의 머리는 순금이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쇠요 그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단 2:31-33)

이렇듯 지금 다니엘의 눈에만 보이는 것, 요셉의 눈에만 보이는 것, 그리고 지금 내 눈에만 보이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인생의 과제요, 사명입니다. 


2. 비교하지 말자. 

그렇게 각자의 과제와 사명을 완수해 갈 때,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비교하지 않는 것’

왜 비교하면 안 될까요? 비교하면 내 안에 ‘부정적인 마음’이 싹트니까요.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왜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을까요? 자신이 받은 것을 옆에 있는 친구들과 비교했기 때문입니다. 비교하는 순간, 원망이 찾아오고, 미움이 찾아오고, 시험이 찾아왔죠. 

나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천하보다 귀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고귀한 존재입니다. 옆에 있는 남편이나 아내, 그리고 자식들을 타인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특히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이죠. 선물은 감사함으로 받는 것입니다. 

이에 어떤 환경에서나 당당했던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빌 4:11)

‘자족’하는 마음은 어떻게 우리 안에 형성될 수 있을까요?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소소한 것에 감사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자족하는 법을 배워가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이런 의문이 생긴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님, 그러면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며 살라는 말입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게 흘러간다면 아무런 발전이 없겠죠. 

이에 대해 기독교인이었던 ‘아들러’는 이렇게 답을 했더군요. “이상적인 나와 비교하라” 

무슨 말인가요? 타인이나 친구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해가면서 나 자신을 발전시켜가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에 또다른 열등감이 생기겠죠. 그런데 아들러는 이때 나오는 열등감을 ‘건전한 열등감’이라고 표현하고 있더군요. 왜 건전한 열등감이라고 했을까요? 건전한 열등감은 나를 파괴하지 않고 건전한 방향으로 나를 발전시켜가니까요. 

오늘날 현대인들의 비극이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건전한 열등감’이 아니라 ‘파괴적인 열등감’에 사로잡혀 살고 있습니다. ‘파괴적인 열등감’에 사로잡히면 모든 것이 파괴되고, 모든 것이 단절됩니다. 이웃과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부모와 지식간의 관계, 심지어 나 자신과의 관계까지. 그리고 그 파괴의 종말은 스스로의 생명을 파괴시키는 것에 이르게 되죠. 

그래서 나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타인과 비교해가면서 얻은 성공이나 과제 완수는 ‘유토피아(Utopia, 천국)’가 아니라 ‘디스토피아’(Dystopia, 지옥)일 테니까요. 


3. 타인의 바운더리(Lifestyle)를 존중하자.

그렇게 레위의 세 아들은 각자의 과제와 사명이 달랐는데, 둘째인 ‘고핫’이 성막에서 가장 중요해 보이는 성물들을 옮기는 일을 맡습니다. 아마 다른 형제들의 부러움을 샀을 것입니다. “고핫 자손의 종족들은 성막 남쪽에 진을 칠 것이요 그들이 맡을 것은 증거궤와 상과 등잔대와 제단들과 성소에서 봉사하는 데 쓰는 기구들과 휘장과 그것에 쓰는 모든 것이며”(민 3: 29-31) 

그런데 이것이 훗날 그들에게 큰 걸림돌이 되죠.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아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과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 가운데에서 이름 있는 지휘관 이백 오십 명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르니라”(민 16:1,2)

모세를 대적했던 고라의 할아버지가 누구입니까? 레위의 둘째 아들 ‘고핫’입니다. 고핫의 손자 ‘고라’의 마음속에 왜 이런 마음 -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에서 스스로 높이느냐”(민 16:3) - 이 들었을까요?

다른 형제들과 비교해보니 자신들이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모세와 아론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하다 보니, 자신들도 그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비교의식에 사로잡히면 나오게 되는 또 다른 마음이 이것입니다. “우월감” 

그래서 나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열등감”에 빠지던가, 아니면 “우월감”에 빠지게 되죠. “우월감”은 성경의 단어로 “교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민수기 3장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레위 지파는 나아가 제사장 아론 앞에 서서 그에게 시종하게 하라”(민 3:6) 레위인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제사장을 돕는 위치죠. 레위인의 바운더리와 한계를 명확히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고핫의 손자 고라가 모세와 아론의 자리를 넘봅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나요?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들의 집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들의 재물을 삼키매”(민 16:32)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바운더리(선)를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내 한계, 내 바운더리가 어디까지인지를 인식하며 사는 것, 이것이 삶의 지혜인 것 같습니다. 왜요? 바운더리를 넘으면 타인도 괴롭지만 사실은 나 자신이 더 괴롭기 때문입니다. 바운더리를 넘으려는 순간 고라 자신이 더 힘들어졌죠!

우리는 자녀를 키우면서 깨닫습니다. 부모가 자녀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있나요? 없죠. 그런데 부모인 우리는 자꾸 바운더리를 넘으려고 합니다. 대신 살아줄 수도 없고, 대신 시험 치러줄 수도 없는데 계속 넘으려고 하죠. 부모인 우리는 이 격언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말을 냇가로 데려 갈 수는 있어도 마시게 할 수는 없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있고 해줄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살을 맞대고 사는 부부 사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해도 되는 일이 있고, 하면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서로의 바운더리를 인정해주고, 서로의 생각을 존중해주고, 서로의 라이프 스타일을 존중해 주며 살아갈 때, 우리 가정과 공동체는 더욱 살맛나는 공동체가 되어갈 것입니다. 


* 결단과 중보기도 

1. 타인을 존중하며 자족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2. 사명 감당하고 과제를 완수하는 한 해 되게 하소서. 

3. 치료중에 있는 형제자매들을 돌보시고 우리 교회의 앞길을 인도해 주소서.(중보기도) 


* 속회 헌금 - 찬송 ________  장

* 헌금 기도 - 인도자

* 광고 – 속장 

*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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