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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속회) 공과

22년 10월 - 행복(7) "타자공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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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VisionChurch
댓글 0건 조회 1,654회 작성일 22-09-2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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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신경

* 찬송  -

* 기도  -                                

* 마음열기   

1) 지난 한 달 동안 가장 감사한 일은?

2) 최근,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거나 받은 경험이 있다면 함께 나눠주세요

* 성경 – 사도행전 20장 35절

* 말씀나눔 : 행복(7) 타자공헌(他者貢獻)


‘개인 심리학’의 창시자인 아들러는 인간이 행복해지려면 우리에게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첫째는 ‘자기 수용’이고, 둘째는 ‘타자 신뢰’이고, 셋째는 ‘타자 공헌’입니다. 

먼저 ‘자기 수용’은, 나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자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바꿀 수 있는 것이 있고,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예를 들면 얼굴 색깔이나 국적, 그리고 DNA는 바꿀 수 없죠! 그런데 그렇게 나에게 없는 것에 집중하면서 살면 행복해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꿀 수 없는 것에 집중하지 말고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살자’는 것이 ‘자기 수용’의 핵심입니다. 이에 ‘라인홀드 니버’가 이렇게 기도했죠! “오 주님,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다음으로 ‘타자 신뢰’가 있습니다. ‘타자 신뢰’는 ‘다른 사람을 신뢰하며 살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다른 사람들을 신뢰하며 살아야 할까요? 우리는 ‘타자’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철학적으로 얘기하면, ‘개인’이라는 단어는 홀로 존재할 수 없는 단어입니다. ‘개인’이라는 단어에는 이미 그 바탕에 ‘사회’를 전제로 하고 있으니까요! 

이렇게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 아빠와 관계를 맺고, 언니나 형, 그리고 동생과 관계를 맺습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뭘까요? ‘신뢰’입니다. 부부간에도, 친구 간에도 신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가끔 그 ‘신뢰’가 깨질 때가 있죠. 그럴 때 우리는 무척 힘듭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타자를 ‘신뢰’해야 합니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깨지면, 내 인생 또한 깨지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 줘야 할까요?’라고 베드로가 물어왔을 때,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일곱 번을 일흔번까지라도 할지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한번더 믿어주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나눌 개념 하나가 더 있습니다. 바로 오늘 말씀의 주제인 ‘타자 공헌’입니다. 그러면 ‘타자 공헌’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타자 공헌은, 타자에게 뭔가를 공헌하는 것, 다시 말해 다른 사람에게 뭔가 도움이 되는 것인데, 그러면 왜 타자에게 공헌하는 것이 우리에게 행복이 될까요?


1.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주는 것이 복일까요? 받는 것이 복일까요? 

뭔가를 ‘받는다’는 것은 ‘받아야 할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물질이 부족하거나 사랑이 부족하거나 관심이 부족하거나... 여하튼 뭔가를 타인에게서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반대로 ‘준다’는 것은, 상대방에게는 없지만 나에게는 ‘있다’는 거죠. 

자, 이제 보다 명확해졌죠.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주는 것이 복일까요? 받는 것이 복일까요? 

맞습니다. 주는 것이 복입니다. 오늘 주제인 ‘타자 공헌’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뭔가를 타인에게 내어 줄 수 있을 때, 거기에서 우리는 기쁨을 느끼고, 존재감을 느끼고, 가치를 느끼고, 행복을 느낍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준다’고 해서 꼭 물질적인 것만을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물질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본질이 흐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물질을 줬다고 해서, 주는 나나 받는 그 사람이 꼭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프리카를 보십시오. 선진국에서 얼마나 많은 원조를 받고 있습니까? 물질적인 원조가 저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정말로 받아야 하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입니다. 선진국이 정말로 저들에게 주어야 하는 것은, 오늘의 선진국을 이루게 한 ‘국민의식’인 거죠!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의 삶도 마찬가지죠! 물질적인 원조가 저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다시 오늘 주제로 돌아와서, 사람은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행복해집니다. 왜냐하면 계속해서 받기만 하면 내 인생은 초라해지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열 두 명의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 10:7,8)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받는 사람이 아니라 주는 사람 됩시다!

 

2.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받았다.

이 소제목을 보면서 ‘저는 받은게 없는데요’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자기 수용’의 개념에 대해 나눌 때, 나에게 없는 것에 집중하지 말고 나에게 주어진 것에 집중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자,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여러분에게는 무엇이 주어졌나요?”

신약성경의 절반 이상을 쓴 저자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런데 그에게도 부족한 것이 있었나 봅니다. 그것을 위해 세 번씩이나 기도했으니까요. 그런데 주님은 그의 기도에 yes라는 답을 주지 않고 이런 답을 주십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고후 12:9) ‘됐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가끔 이와 비슷한 적 있지 않나요! 더 큰 곡간을 지으려고 했던 한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계속해서 더 크고, 더 많고, 더 화려한 것을 구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잠시 한 눈 팔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우리는 스스로를 자책하곤 합니다. ‘내가 이러면 안돼지! 나에게 이미 많은 것을 주셨는데... 정말 그것이 나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하나님이 주실텐데!’

주님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에게 주기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이 가져라’, ‘더 많이 벌어라’,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그 환경에서 ‘네가 가지고 있는 그것을, 네가 할 수 있는 그것을 함께 나누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죠.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 ‘우리가 가서 뭘 좀 사올까요?’라고 투덜대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그저 ‘지금 너희에게 있는 것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한 어린아이가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지고 왔죠! 축사하신 뒤 그 자리에서 나눠주셨습니다. 그랬더니 5000명이 먹고 12광주리나 남았습니다. 이 장면에서 예수님은 과거나 미래를 얘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현재, 지금 당장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예를 사도행전 3장에서 보게 되는데,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가다가 한 병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때 그 병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행 3:6)

베드로를 보십시오. 베드로는 은이 모아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금을 기다리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베드로에게 금이나 은이 있었다면 그에게 주었겠죠! 그러나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은과 금이 없다고 해서 그는 좌절하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비관하지도 않았습니다. 왜입니까? 그에게만 있는 다른 무엇인가가 그에게는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이었나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입니다. 

자, 이제 다시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오늘 우리에게는 무엇이 있나요?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지 않나요?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지 않나요? 우리에게도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 앉아 있는 병자에게 주었던 따뜻한 마음이 있지 않나요? 우리에게도 제자들의 마음에 있던 주님의 나라를 향한 거룩한 꿈과 열정이 있지 않나요?

작은 것부터 실천해보면 어떨까요?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사랑하는 자녀들과 사랑하는 부모님을 위해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요? 피곤해하는 아내를 위해 몰래 설거지를 해준다면, 만들 수 있는 반찬이 몇 가지 없지만 정성껏 밥상이라도 한번 차려 준다면, 그 마음에 감사와 고마움과 행복감이 밀려오지 않을까요! 마음을 담은 작은 편지 하나가 그 편지를 받는 사람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지 않을까요! 형제자매에 보내주는 작은 미소 하나가 지친 우리 모두에게 생수가 되어주지 않을까요!

이에 우리는 다음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3. 행복은 바로 여기, 지금부터 시작할 수 있다. 

이번 ‘행복’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이런 질문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인생을 산 정상을 향해 가는 등산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공원을 걷는 산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우리가 인생을 산 꼭대기를 향해 가는 등산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우리 주변에 있는 아름다운 꽃들을 놓치고 말 것입니다. 아름다운 새들의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생을 ‘산책’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지금 내 곁에 있는 것 하나하나에 감사하면서, 그것들을 사랑의 눈빛으로 소중하게 다룰 것입니다.

행복은 이런 것입니다. 행복은 나중에 돈을 많이 번 뒤에야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내가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더 많은 은행 잔고가 쌓여야 맛볼 수 있는게 아닙니다. 심지어 행복은 내 건강이 이전보다 더 좋아지고 더 건강해져야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행복은 바로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자기 수용’ ‘타자 신뢰’, 그리고 ‘타자 공헌’을 통해 주어집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바꿀 수 없는 것에 집중하고, 가끔 상처 받을 때 있지만 사람에 대한 신뢰를 끝까지 잃지 않으며, 나에게 주신 은혜와 축복을 이웃과 나누며 살 때, 하늘에 속한 ‘행복’이라는 단어가 우리를 찾아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 안에 거하는 속회 식구들 되길 소망합니다. 


* 결단과 중보기도 

1. 현재에, 주신 것에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2. 행복으로 가득한 가정과 속회되게 하소서.

3. 영육간에 어려움에 처해 있는 형제자매들을 돌보시고 치유해 주소서.(중보기도) 


* 속회 헌금 - 찬송 ________  장

* 헌금 기도 - 인도자

* 광고 – 속장 

*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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