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6월 - 행복(3) "과제의 분리" 페이지 정보 작성자 VisionChurch 댓글 0건 조회 1,936회 작성일 22-05-24 18:41 목록 본문 * 사도신경* 찬송 -* 기도 - * 마음열기 1) 지난 한 달 동안 가장 감사한 일은?2) 요즘 나를 행복하게 해준 일은?* 성경 – 누가복음 38장 38-42절* 말씀나눔 : 행복(3) “과제의 분리”(2021년 9월 2주 주일설교)매년 ‘에어앤피랩 학문연구소’에서 ‘세계 행복 지수’가 발표됩니다. ‘국민들이 스스로를 얼마나 행복한지를 느끼고 있느냐’를 기준으로 통계를 내는데요, 2020년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어디일까요? ‘핀란드’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은 18위에 랭크되어 있고, 우리 조국 대한민국은 61위입니다. 이 통계를 보면서 알게 되는 것은, 선진국이라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히 남미에 있는 나라들은 한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더 가난하지만 행복지수는 한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높죠. (코스타리카, 온두라스, 에콰도르, 자메이카)이를 통해 알게 되는 것은, ‘행복’이라는 것은 ‘내가 뭘 얼마나 가졌느냐’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행복은 각자가 느끼는 현재에 대한 만족감에서 나오죠. 오늘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그린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을 방문한 그리스도’라는 작품인데요, 마리아는 예수님 발치에 앉아 있고, 마르다는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데요, 마르다의 얼굴을 유심히 보십시오. 뭔가 좀 불편한 것 같죠? 뾰루퉁한 표정같기도 하고요. 마르다는 오늘 왜 이렇게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는걸까요? ‘불평’이라는 마귀가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옆에서 콕콕 찌르고 있죠!어떻게 해야 마르다를 좀 더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1. 우리 모두는 각자의 ‘선’(善)을 위해 산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누구 하나 악(惡)을 원하는 자는 없다” ‘선’과 ‘악’이라는 것은 어떤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상대적이고 개인적이고 상황적일 수도 있다는, 조금은 철학적인 얘기입니다. 이 개념을 장발장을 예로들어 설명해 드렸죠! 우리가 잘 아는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는 배가 너무 고팠습니다. 그래서 빵 한 덩어리를 훔치게 됩니다. 그에게 있어서 빵 한 덩어리를 훔치는 것은, 자신이 살기 위한 ‘선’이었던 것입니다. 전쟁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적군이 쳐들어왔을 때, 총을 들고 나가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살인을 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 가족과 조국이 적군에 의해 짓밟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와 총부리를 맞대고 있는 적들도 그렇게 나를 죽이는 것을 ‘선’으로 여기고 있죠. ‘우리 모두는 각자 선을 위해 산다’는 명제는 바로 이런 맥락의 이야기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지금 마르다는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면 마리아는 왜 예수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던 것일까요? 마리아에게 있어서 ‘선’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마르다에게 있어서 ‘선’은 예수님을 위해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었죠. 여기에서 우리는 마르다도 마리아처럼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을텐데 그렇지 못한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선’이라고 판단했다면, 본인은 본인의 생각과 판단대로 밀고 나가면 됩니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선’을 타인에게도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왜인가요? 그렇게 강요하게 되면, 강요받은 사람은 마음에 상처를 입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살아가면서 서로 ‘대화’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속에 각자가 우선시 하는 순서가 다르기 때문이죠. 음식을 함께 요리해 먹은 뒤에 같이 말씀을 듣자고 하던가, 말씀을 함께 들은 뒤에 요리를 만들어 먹자던가, 아니면 예수님이 시간이 바쁘시니까 역할을 분담해서, 마리아는 말씀을 듣고 마르다는 음식을 준비해서 예수님을 대접해드리고, 나중에 마리에게서 예수님의 말씀을 전해 들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마디도 얘기하지 않고 있다가 오늘 본문처럼 일방적으로 마리아를 다그치듯이 몰아가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행복해지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기억하십시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선’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대화하며 사십시오. 그럴 때 우리 모두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2. 타인의 과제에 끼어들지 말라미국에 와서 참 좋은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운전입니다. 미국에선 ‘크랙션’ 소리 듣는 일이 드물더군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위험할 때가 많았습니다. 언제가 가장 위험하냐면 갑자기 끼어들 때입니다. 심지어 고속도로에서도 끼어들더군요. 가정에서 가끔 큰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인데요, “끼어들 때”입니다. 특히 신혼 때 많이 싸우게 되는데요 왜 신혼 때 많이 싸울까요? 내 삶에 갑자가 외간 남자가, 외간 여자가 끼어들었기 때문입니다. 30년 가까이 살아온 내 삶의 스타일이 있는데, 1, 2년 사귀다가 결혼한 여자나 남자가 갑자기 끼어드니까 불편하고 어색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의 신혼부부는 더 힘들죠. 시댁 부모님도 끼어들고 장인 장모님까지 끼어드니까요. ^^ (혹 이제 막 결혼한 자녀를 둔 부모님 계시나요? 끼어들지 마십시오. 끼어들면 싸움이 더 커집니다. 그냥 내버려 두면 자기들끼리 지지고 볶으면서 잘 삽니다. 끼어들지 않는 게 지혜입니다.) 또 부부가 언제 싸우게 되냐면, 아이가 태어날 때입니다. 왜 아이가 태어날 때 싸움이 잦아질까요? 이번에는 아기가 끼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과 경험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죠. 남편은 남편 나름대로 자신의 어릴적 기억을 가지고 있고, 아내도 아내 나름대로의 경험을 가지고 있기에 부딪힐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이들은 강하게 커야 한다고 아기 옷을 다 벗겨 놓습니다. 그러면 아내는 ‘그게 무슨 소리냐’고 ‘동양 아이들을 따뜻하게 키워야 한다’고 보자기로 돌돌 말아 놓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여름에는 등짝이 땀띠로 뒤범벅되고, 겨울에는 다 벗겨 놔서 콧물이 마를 날이 없게 됩니다.^^ 결국 중간에서 아이만 힘들게 되죠.오늘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마르다는 지금 마리아와 예수님 사이를 끼어들고 있는데, 그래서 모두가 불편해지고 맙니다.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눅 10:40).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마리아 마음이 지금 어떨까요? 중간에 서 있는 예수님의 마음은 어떨까요? 마르다가 끼어들기 전까지 마리아는 행복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행복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갑자기 마르다가 무례하게 끼어드는 순간, 모든 행복은 연기처럼 사라져버리고 말죠. 여러분도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무례하게 굴면 기분이 상하죠. 저도 가장 상대하기 싫은 사람이 ‘예의 없는’ 사람들입니다. 행복하고 싶으십니까? 내 과제, 내 사명에 집중하며 사십시오. 여러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함부로 끼어들지 마시고 각자의 바운더리를 존중해 주십시오. 내 삶이 소중하듯 타인의 삶도 소중하니까요! 3. 각자의 과제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겨라. 자녀 교육에 목숨을 거는 두 민족이 있다고 합니다. 한국과 이스라엘! 저희 아이들은 서울 강남에서 초등학교 다니다 왔는데 강남 엄마들 치맛바람 정말 대단하더군요. 그런데 성경에도 치맛바람 일으키며 등장하는 한 어머니가 있습니다.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마 20:21). 이 말을 들은 다른 제자들이 격노하게 됩니다. 왜요? 오늘날로 하면 한 명은 부통령, 다른 한명은 국무 장관에 임명해달라는 얘기니까요. 이 요청에 예수님은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겠느냐?”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마실 수 있다’고 답하죠. 그때 예수님은 저들에게 마지막으로 이런 답을 주십니다.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마 20:23).여기에서 예수님은 타인의 과제와 자신의 과제, 그리고 아버지의 과제를 분리시키고 있습니다. 마시고 안 마시고는 야고보와 요한이 선택할 과제죠. 그러나 그렇게 잔을 마셨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내 좌우편 자리를 줄 수 있나요? 그건 아니죠. 내 좌우편의 자리를 줄 건지 말 건지는 아버지의 영역, 아버지의 과제죠. 예수님은 제자들의 영역도, 성부 하나님의 바운더리도 침범하지 않고 있는 것에 주목하십시오. 우리는 가끔 나와 가까운 사람들의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고 내 마음대로 결정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특히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강한 것 같습니다. 실례로 회사에서 직장 상사가 오늘 점심으로 ‘된장찌개’ 먹고 싶으면 그날은 전부 된장찌개 먹어야 합니다. 식당에 가서 아빠가 오늘은 ‘김치 찌개’ 먹고 싶다고 하면 그날은 전부 다 ‘김치 치개’를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보니 참 다르더군요. 유치원 다니는 꼬마에게까지 그날 메뉴에 대해서 일일이 물어보죠!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이렇게 존중해줘야 하는게 아닐까!’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성자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께 부탁해서 안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잔을 마시기로 결정했다면 그렇게 해도 돼” “그러나 내 좌우에 앉는 것은, 내 소관이 아니야” “그것은 아버지 몫이야”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언제 우리에게 행복이 찾아올까요? 우리도 이렇게 타인의 바운더리를 존중하며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과제에 집중하며 살아갈 때, 그리고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것들은 하나님께 맡기며 살아갈 때, 우리의 짐이 좀 더 가벼워지고, ‘행복’이라는 단어가 좀 더 가까이 다가오지 않을까요! 예수님의 삶의 지혜가 우리의 지혜가 되어, 어제보다 더 행복한 오늘을 만들어가는 우리가 가길 소망합니다. * 결단과 중보의 기도 1. 과제를 분리하며 살겠습니다. 2. 서로를 존중하는 인격적인 속회와 교회되게 하소서.3. 영육간에 어려움에 처해 있는 형제자매들을 돌보시고 치유해 주소서.(중보기도) * 속회 헌금 - 찬송 ________ 장* 헌금 기도 - 인도자* 광고 – 속장 * 주기도문 첨부파일 22년 6월 - 행복3 과제의 분리.pdf (170.3K) 3회 다운로드 | DATE : 2022-05-24 18:41:14 이전글22년 7월 - 행복(4) "타자신뢰" 22.06.25 다음글22년 5월 - 행복(2) "Repair" 22.04.22 댓글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