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3월 - 교회(5) "구원의 방주(2)" 페이지 정보 작성자 VisionChurch 댓글 0건 조회 2,062회 작성일 22-02-23 05:18 목록 본문 * 사도신경* 찬송 -* 기도 - * 마음열기 1) 지난 한 달 동안 가장 감사한 일은?2)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달란트는 무엇인가요?* 성경 – 창세기 6장 17-22절* 말씀나눔 : 교회(5) “구원의 방주(2)”(2021년 8월 2주 주일설교)지난달에 이어 오늘도 ‘노아의 방주’에 관한 말씀입니다. 노아의 방주’가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노아의 방주는 하나님이 이 땅에 지으라고 명하신 최초의 건축물이기 때문입니다. 방주의 설계도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왔죠! 그럼 노아의 방주는 또 어떤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을까요?1. 칸과 층이 나뉘어 있다.본문 14절입니다.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창 6:14). 수많은 칸들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또 단층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3층으로 지어졌죠.“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창 6:16).왜 그렇게 설계하셨을까요? 안전과 편리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설계하신 근본적인 이유는 많은 방들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수 만종의 동물이 존재하고 있는데,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모든 동물을 한 방에 밀어 넣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이 대목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이 서로의 바운더리와 사생활을 존중하며 질서 있게 공존해가길 원하십니다. 이는 교회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집사’라는 직분이 생깁니다.“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행 6:2-4)교회 일 목사 혼자 다 할 수 있습니까? 아니죠. 다 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하다간 얼마 못 가 ‘번 아웃’(burn out) 됩니다. 이건 목사뿐만 아니라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이 일 잘하고 말 잘 듣는다고 그 사람에게 이것저것 다 맡기면 머지않아 나가떨어집니다.이 말씀 보십시오. 나눠서 하고 있죠.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 사역에만 집중하고, 일곱 집사들은 접대하는 일을 맡게 되죠. 집에 손님이 오게 되면, 미리 청소도 해야 하고, 식사도 준비해야 하고, 쉴 자리도 마련해줘야 하고... 신경쓰고 해야 할 일이 많죠. 각자의 역할과 바운더리가 다르더라는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행하는 자이겠느냐 다 병 고치는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고전 12:29,30). 각자 받은 은사와 사명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달란트 비유를 통해 예수님도 각자 받은 은사와 사명이 다름을 말씀하시죠.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마 25:14,15) 성가대원들의 음색이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로 각기 다르듯이, 각자의 은사와 달란트가 다른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받은 달란트는 무엇인가요? 이 정도 교회생활 하셨으면 이젠 아셔야 합니다. 아직까지“저는 제 달란트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면 곤란합니다.^^그래도 내 달란트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요? 무엇인지 알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이 나에게 주신 달란트입니다. 혹 어린 아이들이 눈에 계속 밟히십니까? 사춘기 때 방황했던 자신을 떠올리며 유스 아이들에게 마음이 가신 분들이 계십니까? 그런 분들에게는 ‘교사’의 달란트를 주신 것입니다. 한국의 어떤 장로님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요, 그분은 평생 주일학교 교사만 하시다 은퇴하시더군요. 미국의 39대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도 퇴임 후에 계속해서 주일학교 선생님으로 봉사했다고 하죠. 혹 성가대에 계속 눈이 가시는 분 계십니까? 그러면 성가대에 들어오십시오. 혹 찬양팀에 계속 마음이 가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러면 찬양팀에 들어오십시오. 찬양팀 안에도 할 일이 많습니다. 혹 교회의 노후되고 낡은 부분이 마음에 걸리시는 분이 계십니까? 교회가 더 예뻐지고 산뜻해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그러면 장식부에 들어오십시오. 혹 교회의 빈 자리가 마음에 부담으로 다가오는 분이 계십니까? 부흥에 대한 염려와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러면 전도부에 들어와서 여러분의 지혜를 함께 나눠주십시오. 혹 아프리카나 남미의 미전도 종족들이 눈에 밟히십니까? 그러면 선교부에 들어오십시오. 이것이 교회입니다. 2. 말씀대로 준행했다. 본문 22절입니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창 6:22). 오늘 창세기 6장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이 저는 이것입니다. 왜인가요? 하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할 방주를 완벽하게 설계해 주시는데, 그 설계대로 만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속담에 이런 말이 있죠.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야 보배다”이 대목에서 우리는 좋은 교회의 특징을 발견하게 되는데, 여러분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일까요?이런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성도들이 모여있는 교회”신학교 다닐 때 알게 된 한 권의 책이 있는데, 이 책을 아직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왜 성서가 교회 안에서 침묵을 지키는가?”이 책에서 저자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오늘날 모든 크리스찬에게는 성경책이 손에 쥐어졌다. ‘오직 성경’을 외치며 교회에서의 최고의 권위는 ‘성경’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로 그러한가?” “성서가 교회 안에서 침묵하고 있지 않은가?”오래되고 작은 책이지만 오래도록 저에게 울림을 준 책이었습니다. 오늘날 점점 이 세상이 기독교가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힘 있고 권세 있는 사람들이 교회에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살려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오늘날 하나님이 이 세대를 보며 탄식하시는 것은, 크고 멋지고 화려한 교회들이 없어서가 아니라 노아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는 교회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요!“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창 6:22)오늘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 되길 소망합니다. 3. 외쳤다. 베드로 사도는 노아에 관해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벧후 2:5). 노아가 세상에서 무엇을 했나요? ‘의’를 전파했습니다. 한마디로 입을 열어 하나님의 의를 전파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하나님이 그렇게 살라고 우리를 지으신게 아니다”“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다”... 그러면서 산꼭대기에서 배를 지었죠. 몇 년 동안? 120년 동안. 히브리서 기자는 그러했던 노아의 삶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라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히 11:7)“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했다?” 이게 무슨 말씀인가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120년 동안 산꼭대기에서 방주를 지었던 그의 삶 자체가 불신자들에게 도전이었고, 전도였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는 입으로만 외친게 아니라 삶으로 외치고 있었던 거죠.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것이 전도입니다. 모두가 비웃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묵묵히 산꼭대기에서 배를 지어가는 삶. 이것이 전도입니다. 그리고 결국 그렇게 살다간 노아와 그의 식구들을 통해 지구가 구원받게 되죠. 우리 교회에 속한 각 가정들이 노아의 가정처럼, 이 세대를 깨우는 가정되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은 노아와 관련해서 이런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 24:37-39).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나요! 성경의 예언처럼, 우리는 이제 불의 심판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 징조들이 여기저기서 보이고 있죠. 지금 세계 곳곳이 불타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불의 심판에 앞서 당신의 백성들을 건져내기 위해 또 다른 방주를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바로 ‘교회’라는 방주입니다. 이 마지막 때에 우리 공동체가 노아의 방주의 역할을 감당해내는 공동체 되길 소망합니다. 그러려면 묵묵히 산꼭대기에서 하나님의 설계도대로 배를 지어야 합니다. 배를 짓되 상중하 삼층으로 칸들을 막아 각자의 달란트를 최대한 활용해 가며 질서 있게 배를 지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배를 지으면서 입을 열어 외쳐야 합니다. 삶으로 외쳐야 합니다. 인생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지... 우리가 그러한 모습으로 방주를 지어가고 있다면, 그 모습 자체가 이 세상을 향한 경고가 되고 도전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모습으로 지어간다면, 하나님이 구원시키기로 작정하신 수많은 생명들을 이 배 안으로 밀어 넣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하나님이 문을 닫으시고, 이제는 물 위로 뜨게 하실 것입니다. 불의 심판을 앞 둔 이 마지막 때에, 노아의 방주와 같은 우리 교회, 시대를 깨웠던 노아와 같은 가정되어, 마지막 날에 노아의 방주가 물 위로 뜬 것처럼, 주님 다시 오시는 날 들림받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 결단과 중보의 기도 1. 서로를 존중하며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 대로 섬기겠습니다. 2. 우리 속회와 교회가 마지막 때에 귀히 쓰임 받는 ‘구원의 방주’되게 하소서. 3. 영육간에 어려움에 처해 있는 형제자매들을 붙들어 주소서.(중보기도) * 속회 헌금 - 찬송 ________ 장* 헌금 기도 - 인도자* 광고 – 속장 * 주기도문 첨부파일 22년 3월 - 교회5.pdf (102.1K) 2회 다운로드 | DATE : 2022-02-23 05:18:48 22년 3월 - 교회5.hwp (75.0K) 1회 다운로드 | DATE : 2022-02-23 05:18:48 이전글22년 4월 - 행복(1) "자기수용" 22.03.26 다음글22년 2월 - 교회(4) "구원의 방주(1)" 22.01.31 댓글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