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2월 - 교회(4) "구원의 방주(1)" 페이지 정보 작성자 VisionChurch 댓글 0건 조회 2,194회 작성일 22-01-31 11:15 목록 본문 * 사도신경* 찬송 -* 기도 - * 마음열기 1) 지난 한 달 동안 가장 감사한 일은?2) 신앙 생활하면서 가장 기쁠 때가 언제인가요?* 성경 – 창세기 6장 13-16절* 말씀나눔 : 교회(4) “구원의 방주”(2021년 8월 1주 주일설교)이 세상에 존재하는 포유류는 약 3,500종, 조류는 8,600종, 파충류와 양서류는 5,500종, 곤충류는 25,500종으로 모두 합하면 약 45,000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 모든 동물들을 합해서 표준 크기를 내보면, 양 정도의 크기가 되는데, 결국 평균 양 크기 정도의 척추동물 45,000여 마리가 배에 타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는 150량이 달린 기차가 있어야 다 실을 수 있는 분량인데요, 노아의 방주를 객차로 환산하면 520량의 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정결한 동물은 일곱 쌍씩 넣는다 해도 모든 동물을 싣고도 남을 만큼의 충분한 용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노아의 방주는 길이가 300규빗(135미터),너비가 50규빗(23미터), 높이가 30규빗(14미터)나되는 엄청나게 큰 배였습니다. 배의 내부 면적은 약 9,000평방미터 정도로, 농구장 20배 크기로 이는 약 14,000톤급의 배와 같은 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1884년 이탈리아 선박인 ‘에투리아’가 건조되기까지 노아의 방주는 세계에서 제일 큰 배였습니다. (타이타닉의 절반 길이)노아의 방주는 이렇게 거대한 배였는데, 이러한 외적인 거대함보다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영적 의미가 더 중요합니다. 노아의 방주는 오늘날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귀한 깨달음을 주니까요. 1. 역청으로 칠해져 있다. 본문 14절 말씀에서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창 6:14). 여기서 ‘역청’이 나오는데 역청은 배 안에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방수 역할을 합니다.(아스팔트) 나무로 만들어진 배에 역청을 바르지 않으면 그 배는 물에 잠길 수 밖에 없겠죠. ‘역청’은 히브리어로 [카파르]인데, 이는‘구속’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구속’은 ‘죄를 속한다’,‘죄를 씻는다’‘죄를 덮어준다’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교회에 없어서는 안 될 첫 번째 요소를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구약의 유월절 사건을 잘 아실 것입니다. 출애굽 할 때 바로가 끝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내놓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애굽의 모든 장자를 죽이는 10번째 재앙을 내리시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는 집 문설주에는 양의 피를 바르게 해서 천사가 재앙을 내리지 않고 그냥 건너뛰게 하셨죠. 마찬가지로 앞으로 다가올 불의 대심판에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신약의 방주인 ‘교회’를 세우시는데, 그 안팎은 반드시 “역청” - “카파르” 이 칠해져 있어야 합니다. “카파르”가 무엇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교회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묻어있어야 합니다. 에덴동산이 에덴동산일 수 있었던 것은 ‘동산’이라는 울타리가 쳐 있어서 외부의 악한 세력이 침투하지 못하게 방지했던 것처럼, 교회가 교회 되게 하는 것은, 외형적인 크기나, 재정적인 풍족함이나, 성도들의 많고 적음이 아닙니다.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그 교회를 감싸고 있어야 교회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보혈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사랑이죠! 우리 교회와 속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묻어있는 공동체 되길 소망합니다.오늘 이 말씀 기억하십시다.“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창 6:14). 역청이 어디에 발라져 있습니까? 밖에만 발라져 있는게 아니라, 안에도 발라져 있죠.“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사도 바울은 우리의 모임뿐만 아니라 우리의 몸도 ‘성령의 전’이라고 했는데, 바라기는 우리의 겉과 속이 예수님의 보혈로 칠해져 있는 성도다운 성도, 교회다운 교회가 되어가길 소망합니다. 2.‘노’‘키’‘돛’‘닻’이 없다‘타이타닉’이라는 영화를 잘 아실 것입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튼튼한 배였죠. 사람들은 이 배를 이렇게 불렀습니다. The Unsinkable”절대로 침몰하지 않는 배. 그래서 이 배에는 구명선을 넉넉히 비치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요? 절대로 침몰할 수 없는 배니까. 그러나 어떻게 되었습니까? 작은 빙산 하나에 부딪혀서 침몰해버리고 맙니다. 이 사건은 인류에 큰 충격을 주죠. 그래서 이 사건을 계기로 SOS 신호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노아의 방주에는 노도 없고, 키도 없고, 돗대도 없고, 닻도 없는 배가 무사히 아라랏산에 도착합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 이 대목에서 우리는 교회 운영에 있어서 중요한 한가지를 깨닫게 됩니다. 교회의 ‘키’를 쥐고 있는 분은 누구신가요? 교회의 ‘키’는 교회의 머리 되시는 예수님이 쥐고 계십니다. 그럴 때만이 방주안에 타고 있는 성도들이, 무사히 저 천국문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교회의 키를 쥐고 있는 분은 저도 아니고 여러분도 아닙니다. 교회의 키는 주님이십니다. 그래야 무사히 아라랏산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의 키를 쥐고 계시는 분이 누구실까요? 맞습니다. 주님이십니다. 내 인생의 키를 내가 쥐고 살면 굉장히 힘들 것입니다. 나 자신도 힘들고, 같이 사는 사람도 힘들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힘들어집니다. 순리대로 살지 못하고 계속 역리하게 되죠. 그러면 결국 마음도 병들고 몸도 병들고 맙니다. 예수님은 그런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예수님께로 맡길 때, 쉼과 안식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잘 안됩니다. 머리로는 아는데 실천이 안되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내가 만든 것이니까요. 노아의 방주 누가 만들었나요? 노아가 만들었죠. 몇 년동안? 120년 동안. 그래서 손을 놓는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120년이라는 시간과 땀이 들어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 신앙이고 믿음입니다. 오늘날 내가 힘든 것은, 내려놓지 않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있고, 상대방이 감담해야 할 몫이 있는데, 세상 모든 무거운 짐을 다 내가 짊어지고 가려고 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자식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로서 최선을 다했다면 이제는 내려놓으십시오. 그래야 자유가 찾아오고 안식이 찾아옵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리로다”(시 23:1) 이 믿음으로 살아갈 때,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받는 축복이 함께할 줄 믿습니다. 3. 열려 있다. 본문 16절입니다.“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을 옆으로 내고”(창 6:16). 위로는 창문이 나 있죠. 위로 난 창문으로 공기도 들어오고 햇빛도 들어오고 빗물도 들어와야 그 안에 있는 생명들이 살아갈 수 있겠죠. 이스라엘에는 두 개의 바다가 있는데, 하나는 갈릴리 바다이고, 다른 하나는 사해입니다. 갈릴리 바다는 어부들이 물고기를 잡아 생활하지만, 사해에서는 어부들을 볼 수 없습니다. 왜일까요? 갈릴리 바다는 헐몬산에서 내려오는 빙하를 받아 다시 요단강으로 내려 보내지만, 사해는 받기만 하고 흘려보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죽은 바다가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갈릴리 바다가 헐몬산에서 녹아 내리는 신선한 물을 받아 흘러 내리듯, 주님의 몸된 교회에는 하늘로부터 내리는 생수를 받아서 흘려보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살고, 그 안에 거하는 영혼들이 삽니다. 이는 속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속회가 세상 이야기만 오가는 곳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속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 뭔가 가슴 벅찬 감동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생수와 말씀으로 가득채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와 감동들이 계속해서 흘러 내려가야 합니다. 그래야 그 속에 있는 영혼들이 삽니다. 우리 속회가 이처럼 생수가 흘러 넘치는 공동체 되길 소망합니다.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을 옆으로 내고”(창 6:16). 또한 동시에 교회는 이웃을 향해 세상을 향해서도 열려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옆에 나있는 문을 통해, 세상의 모든 동물들이 들어왔죠. 세상의 육식동물도 있고 초식동물도 있고, 날짐승도 있고 들짐승도 있는데, 그 모든 동물들이 이 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인종을 초월하고, 나이를 초월하고, 계급을 초월해서 모든 사람들이 들어 올 수 있도록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곳, 그 곳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참된 교회의 모습입니다. 우리교회가 그렇게 열려 있는 교회되길 소망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렇게 열려 있는 교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이 말씀을 가슴에 품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여기서 대접은 무슨 큰 호의를 주고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접의 기본은 ‘사람 대접’입니다. 내가 타인에게 사람 대접 받기 원하듯, 타인도 나에게 사람 대접 받기를 원한다는 것이고 그렇게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내 마음이 그러하면 타인도 그러하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살라는 거죠. 성도들이 이런 삶의 태도로 살아야 교회가 욕먹지 않습니다. 그래야 교회가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가 되어갈 수 있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닫힌 사람이 되어가기 쉬운데, 우리 속회 식구들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열려 있는 사람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 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아직도 예수님이 누구인지 몰라 방황하는 영혼들이 이곳에 와서 숨을 쉬고, 이곳에 와서 생수를 마시고, 이곳에 와서 인생의 목적을 찾는 그런 ‘구원의 방주’되길 소망합니다. * 결단과 중보의 기도 1. 열린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2. 생명이 소생(蘇生)케 되는 역사가 우리 속회와 교회에서 나타나게 하소서. 3. 영육간에 어려움에 처해 있는 형제자매들을 붙들어 주소서.(중보기도) * 속회 헌금 - 찬송 ________ 장* 헌금 기도 - 인도자* 광고 – 속장 * 주기도문 첨부파일 22년 2월 - 교회4.pdf (107.0K) 3회 다운로드 | DATE : 2022-01-31 11:15:35 이전글22년 3월 - 교회(5) "구원의 방주(2)" 22.02.23 다음글22년 1월 - 교회(3) "에덴동산'(3) 22.01.01 댓글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