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12월 - 교회(2) "에덴동산"(2) 페이지 정보 작성자 VisionChurch 댓글 0건 조회 2,313회 작성일 21-12-04 10:51 목록 본문 * 사도신경* 찬송 -* 기도 - * 마음열기 1) 지난 한 달 동안 가장 감사한 일은?2) 교회 다니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시절)는?* 성경 – 창세기 2장 8-9절* 말씀나눔 : 교회(2) “에덴동산”(2021년 7월 3주 주일설교)교회는 ‘기쁨’이 가득한 곳이어야 함을 지난달에 보았습니다. 오늘도 에덴동산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이 바라시는 공동체의 모습이 무엇인지 함께 알아가려고 하는데요, 에덴 동산이 에덴 동산일 수 있는 것은, 그곳에는 이것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1. 생명 나무“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창 2:9). 하나님은 지금 동산 중앙에 ‘생명 나무’를 두고 계시는데,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죽는 걸 원치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죄를 범한 뒤, 저들을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게 되죠. 하지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시 생명나무를 허락하시는데, 오늘날 우리에게 허락하신 생명나무가 누구일까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시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생명 나무로 인해 에덴동산에서 영생을 누렸던 것처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통해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옆에 있는 분들에게 잘해야 합니다. 왜요? 이 땅에서만 보고 끝낼 관계가 아니라 천국에서도 볼 사람들이니까요.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에게 ‘예수님’이라는 생명 나무를 주셨는데, 생명 나무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한 가지를 당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4) 그러면 우리는 왜 생명나무이신 예수님에게 가지처럼 붙어 있어야 할까요? 붙어 있지 않으면 곧 말라버리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 15:6).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붙어 있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 답을 다음 구절에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9).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예배하는 자리에 찾아왔습니다. 그래야 내 영을 채울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아침마다 성경을 묵상하며 하루를 엽니다. 그래야 팍팍한 세상에서 나 자신을 지켜갈 수 있으니까요.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 육의 건강을 위해 시간을 내서 밥을 먹고 운동을 하듯, 영의 건강을 위해서도 시간을 내야 합니다. 그래야 사니까요! 날마다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을 통해 영의 갈급함을 채워가는 우리가 됩시다. 2.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창 2:9). 에덴동산에서 모든 것은 다 허락하셨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만큼은 허락하지 않으셨죠. 왜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우리는 알지 못하고, 알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선악을 판결할 능력은 누구에게만 있나요? 하나님께만 있죠. 헬라어에 ‘아가톤’(Agathon)이라는 단어와 ‘카콘(Kakon)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아가톤은 ‘선’이라는 뜻인데, ‘선’이라는 의미 속에는 ‘득이 된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카콘은 ‘악’이라는 뜻인데, 무엇이 악이냐면 ‘득이 되지 않는 것’이 악입니다. 득이 되느냐, 득이 되지 않느냐의 기준에 따라 선과 악이 갈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이득’의 기준이 누구인가요? ‘나 자신’입니다. 나에게 득이 되는 것은 ‘선’이고, 나에게 득이 되지 않는 것이 ‘악’인 것입니다. 그래서 ‘미움 받을 용기’라는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이 세상에는 부정이나 범죄 등 각종 악행이 만연해 있지만 순수한 의미에서 ‘악’을 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무슨 얘기인가요? 장발장을 보십시오. 빵 한조각을 훔쳐 먹었습니다. 그래서 19년을 감옥살이하게 되죠. 그런데 그렇게 빵을 훔쳐 먹은 것, 빵가게 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악’이지만, 장발장의 관점에서 보면 ‘선’이죠. 왜요? 안 먹으면 죽으니까요. 자신이 살기 위해선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거죠. 이렇게 똑같은 행위라도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말이 있죠. “내가 하면 로멘스, 남이 하면 불륜!”하나님이 우리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허락하지 않으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중심으로 편향된 인간이 어떻게 선과 악을 판별할 수 있습니까? 자기 중심적인 인간이 어떻게 함부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네, 아니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그래서 저는 입을 열 때마다 ‘하나님의 뜻’ 운운하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가끔 그런분들을 만나죠. “기도해봤더니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 같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분명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 우기더군요. 그런데 그렇게 한참을 살다가 갑자기 방향을 확 바꿉니다. “왜 바꾸냐?”고 물어보면 이번에도 “기도해봤더니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 같다”라고 얘기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이 뜻이 이렇게 ‘조변석개’(朝變夕改) 한단 말입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욕먹고, 교회가 욕먹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제발 그렇게 얄팍하고 수준 낮은 크리스찬이 되지 맙시다. 내 생각과 의견을 정당화시키려고 하나님을 끌어들이지 맙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며 아름다운 에덴동산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요?3.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말라. 우리는 ‘가말리엘’의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사도들을 잡아 죽이려고 할 때 가말리엘이 이렇게 가로막죠.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 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행 5:35,38,39). 무슨 말인가요? 한마디로 함부로 손대지 말라는 거죠. 지금 그렇게 하는 것이 ‘선’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진짜 선’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으니까요.이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네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오느니라”(마 5:35-37). 왜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말씀하셨을까요? 인간의 본성은 ‘자기 중심성’으로 오염되어 있어서, 자기가 보기에는 ‘선’인 것 같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기에는 ‘악’일 때가 많으니까요.기억합시다. 우리에게는 ‘선’과 ‘악’을 판별할 능력과 권한이 없다는 것. 그래서 예수님은 ‘선한 선생님이여’라고 칭송하며 자신을 찾아온 부자 청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죠.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막 10:18).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누가 감히 ‘이것이 선이네, 아니네’라고 함부로 논할 수 있단 말입니까! 누가 감히 ‘하나님의 뜻이네, 아니네’라고 함부로 말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에서 지나는 것은 다 ‘악’일 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며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리라”(신 5:32,33)인류의 역사를 보십시오. 좌로 치우친 사람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까? 우로 치우친 사람들, 얼마나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고 힘들게 합니까? 물론 자신은 ‘뭔가를 이뤘다’는 충만감과 행복감을 만끽할지 모르지만, 그런 ‘나’로 인해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하루하루 지옥같은 삶을 살고 있을 것입니다. 누구 때문에? ‘자기 의’ 에 갇혀 있는 나 때문에!내 가정이, 내가 속한 교회가 그런 지옥 되지 않으려면 이 말씀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말라” 그래서 우리 기독자의 삶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모서리에 서 있는 삶”이다. 모서리는 어떤 위치인가요? 대립면의 경계선이죠.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닙니다. 불안하다고요? 그렇습니다. 인생은 원래 그렇게 불안하고 불안정합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자의 인생은 불안하거나 불안정하지 않습니다. 왜요? 길잡이 별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가니까요. 외줄타기 묘기를 본적 있으십니까? 나이아가라 폭포를 건너가기도 하더군요. 외줄타기 명인들이 흔들리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은, 멀리 내다보며 시선을 한곳에 고정한채 가기 때문입니다. 멀리 보고 가기에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운전도 마찬가지죠, 초보자들은 바로 앞에 있는 차만 보고 가지만 능숙한 운전자가 되면 점점 멀리 내다보며 흐름을 읽으면서 가죠.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깊이가 얕은 사람들은 바로 앞만 쳐다보며 갑니다. 더러는 자신만 보고 가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그래서 쉽게 ‘이것이 선이네, 이것이 악이네’ 단정 짓고, 비난하고, 정죄하며 삽니다. 그러나 가말리엘의 예에서 보듯이, 성숙한 사람들은 멀리 내다보며 삽니다. 그리고 우리 크리스찬들은 더 멀리,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님 바라보며 삽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자의 삶은 불안하지 않습니다. 모서리에 서 있지만 불안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 나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들이 줄어듭니다.이런 ‘라이프 스타일’로 살아갈 때 내 삶을 에덴동산으로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 가정과 속회와 교회가 에덴동산 되어가기를 소망합니다. * 결단과 중보의 기도 1. 생명 나무 되시는 예수님에게 붙어 있는 우리 가정과 속회와 교회 되게 하소서.2.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음으로 가정생활과 신앙(교회) 생활에 기쁨이 가득하게 하소서. 3. 영육간에 어려움에 처해 있는 형제자매들을 붙들어 주소서.(중보기도) * 속회 헌금 - 찬송 ________ 장* 헌금 기도 - 인도자* 광고 – 속장 * 주기도문 첨부파일 21년 12월 - 교회2.docx (30.1K) 2회 다운로드 | DATE : 2021-12-04 10:51:22 이전글22년 1월 - 교회(3) "에덴동산'(3) 22.01.01 다음글21년 11월 - 교회(1) "에덴동산"(1) 21.11.08 댓글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