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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속회) 공과

22년 4월 - 행복(1) "자기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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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VisionChurch
댓글 0건 조회 2,050회 작성일 22-03-26 07:34

본문

* 사도신경

* 찬송  -

* 기도  -                                

* 마음열기   

1) 지난 한 달 동안 가장 감사한 일은?

2) 당신은 언제/어떨 때 가장 ‘행복하다’는 느낌이 드나요??

* 성경 – 마태복음 25장 24-30절

* 말씀나눔 : 행복(1) “자기 수용”(2021년 8월 4주 주일설교)


오늘은 이 질문으로 말씀을 열어볼까 합니다. “행복하십니까?” 

어제보다는 오늘이 좀 더 행복하면 좋겠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조금 더 행복하면 좋겠다는 것, 우리 모두의 희망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중요한 명제(命題) 몇 가지가 있습니다. 


1. ‘어떻게 활용하느냐’ 가 중요하다. 

오늘 본문에는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는 한 사람이 나옵니다. 몇 달란트 받은 종인가요? 한 달란트 받은 종입니다. 그러면 그는 왜 행복하지 않은 걸까요?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전에, 먼저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말씀을 이어 가겠습니다. 왜 아시안 학생들(한국,중국,일본)이 다른 인종보다 더 수학을 잘 할까요? 

여기에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말콤 글래드웰’이 쓴 [아웃라이어]의 내용을 잠시 소개할까 합니다. 다음 숫자를 한번 유심히 보십시오. 4,8,5,3,9,7,6 자, 이제 눈을 감고 한번 떠올려 보실까요?

우리 한국인들이 방금 본 숫자를 거의 다 기억해 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2-3초 안에 이 모든 글자를 다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2초 안에 못 읽습니다. four, eight, five, three, nine, seven six. 시간이 한참 지났네요.^^

단위가 더 높아지면 시간차가 더 벌어집니다. 다음 숫자를 한국말로 읽어 보십시오. 175 ‘백칠십오’이죠. 영어로는요? one hudred seventy five. 여기에 수학 공식까지 들어가면 영어로는 더 길어집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 사람들은 전화번호도 잘 외우고, 자동차 범퍼에 붙여 있는 번호도 잘 외웁니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전화번호도 못 외우고 자동차 범퍼도 못 외웁니다. one hudred ... 하는 사이 벌써 앞에 있던 차가 휭-- 하고 지나가버리기 때문입니다. 

결국 수학 문제는 시간과의 싸움인데요, 시간 내에 풀어야 하는 ‘수학 경시대회’나 SAT에서 동양 아이들이 미국 아이들보다 월등한 성적을 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숫자들을 셀 수 있기 때문이죠. 

또 다른 가설이 있는데요, 아시아인과 유럽인의 주식이 다른데, 아시아의 주식이 뭔가요? 쌀입니다. 유럽은? 밀입니다. 밀은 밭에다 씨만 뿌려 놓으면 자기가 알아서 자랍니다. 그러나 쌀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농사를 ‘짓는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짓는다’는 말은 집을 지을 때도 ‘집을 짓는다’라고 표현하는데, 농사는 집을 짓는 것과 같이 많은 시간과 노동력과 정성이 들어가야 가능하기에 그렇습니다. 

유럽 농부와 동양 농부의 노동 시간을 비교해 봤더니, 유럽의 농부는 1년에 평균 200일 정도 새벽부터 정오까지 일을 했다고 합니다. 1년간 총 1,200 시간 정도의 노동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동양의 농부들은, 2모작이 가능한 중국 남부에 사는 농부를 기준으로 시간을 재보니까 연간 대략 3,000시간을 논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1년 내내 일할 뿐만 아니라, 일하는 량도 유럽에 비교해서 2배가 넘죠. 

‘아웃라이어’의 저자는 바로 이것이 아시아인이 서양인보다 수학을 월등히 잘하는 비결이라고 말합니다. 하루종일 논밭을 일구며 사셨던 부모님의 모습을 어릴적부터 봐왔기에 어려운 문제 앞에서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풀려고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대학 도서관에 가보면 새벽부터 나와서 저녁 늦게까지 공부하는 아이들은 다 동양인들 뿐이라죠!

자, 이제 오늘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본문에 나오는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행복은, ‘나에게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는데, 그는 이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오늘 여러분의 손에는 몇 달란트가 주어져 있나요?

기억합시다. 행복은, 나에게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


2. ‘나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  

오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또 다른 실수가 이것입니다. 

당시 한 달란트는 6,000 데나리온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고, 한 데나리온은 당시 성인 남성의 하루 일당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6,000일을 일해야 만들 수 있는 돈이 한 달란트였다는 것입니다. 6,000일을 년 수로 환산해보면, 16.4년이 나옵니다. 한 푼도 쓰지 않고 적어도 16년을 모아야 모을 수 있는 돈이 한 달란트습니다. 자, 한 달란트가 적은 돈입니까? 큰 돈입니까? 평생 만져볼 수도 없는 큰 돈이죠!

안데르센이 쓴 ‘미운 오리 새끼’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어릴 적 그는 자기 자신을 원망합니다. ‘나는 왜 이렇게 못생겼을까?’ 그리고 주변에 있는 다른 오리들도 그를 구박합니다. 심지어 엄마 오리도 처음에는 그를 다독여 주다가 결국 ‘네가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는 막말까지 내뱉습니다. 그래서 그는 집을 떠나야 했죠. 그러나 그는 머지 않아 깨닫게 됩니다. 나는 오리가 아니라 그가 그토록 사모했던 ‘백조’였음을!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로 보고 계십니까? 혹 여러분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나 부모가 여러분을 ‘미운 오리 새끼’처럼 가치 없는 존재로 취급했나요? 그래서 마음속에 아직까지 한 맺혀 있는 상처가 남아 있나요? 그렇다면 이 말씀을 큰소리로 읽어 보십시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벧전 2:9).

하나님이 나를 ‘택하신 족속’이라 칭하시는데, 누가 감히 나를 무시한단 말입니까?

하나님이 나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 높여 주시는데, 누가 감히 나를 깔아뭉갤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이 나를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인치셨는데, 누가 감히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해 가며 비하할 수 있단 말입니까?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들입니다. 할렐루야!


3. “자기 수용”이 중요하다. 

21세기에 들어와서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긍정’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긍정의 힘’이라는 책도 나왔고, ‘긍정의 심리학’이라는 새로운 학파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자기 긍정’을 넘어 ‘자기 수용’을 향해 가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 긍정’과 자기 수용‘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열심히 공부했는데 60점이라는 결과를 받았습니다. 그때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래 이번에는 운이 나빠서 60점 받았을 뿐이야, 그래도 나는 100점짜리니까 괜찮아’ 이것이 자기 긍정입니다. 

이에 반해 자기 수용은, 60점은 60점 대로 받아들이되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100점에 가까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찾습니다. 이것이 ‘자기 수용’입니다. 현실은 현실대로 받아들이고, 발전을 위해 한 발짝 더 전진하는 거죠. 그러면서 ‘자기 최면’이나 스스로를 속이는 ‘자기 기만’이라는 함정을 피해가는 것입니다. 

오늘 한 달란트 받은 종을 다시 떠올려 보십시오. 그는 먼저 한 달란트가 가지고 있는 가치에 대해 깊이 생각해봐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잘 활용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으니까 삶에서 성취가 없고, 성취가 없으니까 소소한 성취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감도 느낄 수 없었던 거죠. 

그러면 그는 왜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다른 사람들의 손에 있는 것들이 내 눈에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다른 사람들 손에 쥐어진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 삶의 의욕을 상실하게 되죠. 

그러나 그렇게 다른 사람의 손에 쥐어진 것들이 내 눈에 들어올 때, 거기에서 사고를 멈출게 아니라, 한 발 더 나아가 깊이 생각해 봐야 했습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종은 두 달란트 받았습니다. 또 다른 종은 다섯 달란트 받았네요. “그러나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누군가는 남자로 태어나고, 누군가는 여자로 태어납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나’는 남자(여자)라는 거죠. 누군가는 백인으로 태어나고, 누군가는 흑인으로 태어나고, 누군가는 황인으로 태어납니다. 중요한 것은 뭔가요? 지금 우리는 ‘황인종’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에게 한 달란트가 주어졌다면, 그 한 달란트에 집중하며 살다 가면 됩니다. 두 달라트라면 두 달란트에 집중하며 살다 가면 됩니다. 비교하고 말고 할 게 없다는 것입니다. 아까운 시간과 에너지를 그렇게 허비하지 말고 주어진 것을 활용해가며 나 자신의 가치를 높여가는데 쏟아 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인가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 것 왈가왈부하며, 크네 작네, 기네 짧네 따질 할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머지않아 주인이 곧 오시기 때문입니다.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가 쓴 ‘평온을 위한 기도’라는 시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오 주님,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 들이는 평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오늘 이 기도가 우리의 기도 되어 어제보다 더 행복한 오늘을 만들어가길 소망합니다. 


* 결단과 중보의 기도 

1.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2. 행복한 우리 가정/ 속회/ 교회 되게 하소서.

3. 영육간에 어려움에 처해 있는 형제자매들을 붙들어 주소서.(중보기도) 


* 속회 헌금 - 찬송 ________  장

* 헌금 기도 - 인도자

* 광고 – 속장 

*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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