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7월 - 비전(1) "예수님" 페이지 정보 작성자 VisionChurch 댓글 0건 조회 2,562회 작성일 21-07-03 05:30 목록 본문 * 사도신경* 찬송 -* 기도 - * 마음열기 1) 지난 한 달 동안 가장 감사한 일은?2) 우리 가정의 소원은? * 성경 – 마태복음 11장 4-8절* 말씀나눔 : ‘Vision’(1) 예수님(2020년 7월 1주 주일설교)인생에서 어떤 꿈, 어떤 비젼을 가지고 사는가는 참으로 중요한 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인가요? 사람은 꿈을 먹고 사는 존재이고, 사람은 꿈꾸는 대로 되니까요. 그 대표적인 예가 ‘요셉’입니다. 형들은 요셉을 비웃었습니다.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창 37:19). 그러면서 ‘정말 꿈대로 되는지 보자’고 빈정대며 노예상에게 팔아버리죠. 그러나 어떻게 되었나요? 요셉의 인생은 그가 꾼 꿈대로 되어 갔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말하든, 어떻게 평가하든,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 꿈/ 내 비전이 중요합니다. 왜인가요? 내 안에 있는 “꿈”이/ 내 안에 있는 “비전”이 나를 끌고 가니까요. 이에 솔로몬은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합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잠 29:19) 꿈이 없는 나라, 꿈이 없는 인생은 방자(放恣)히 제 멋대로 살다가 망하고 말죠. 1.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오늘 본문에는 꿈을 잃고 방황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바로 세례 요한의 제자들입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모든 것을 다 뒤로하고 광야로 나가 세례를 받고, 그곳에 움막을 지으며 함께 공동체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세례 요한이 옥에 갇히고 맙니다. ‘헤롯 안티파스’가 이복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을 비판했다가 잡혀가게 되죠. 공동체의 미래가 불투명해지던 그때, 세례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보내게 되는데, 예수님은 자신을 찾아온 세례요한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마 11:8)지금까지 걸어온 삶의 방향/ 삶의 근본/ 삶의 본질을 향해 던지는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꿈, 어떤 비전을 가지고 광야로 나갔느냐?”는 것 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오늘날 교회라는 공동체에 모여 있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입니다. “너희는 무엇을 보려고 교회에 다니고 있느냐?” “너희는 어떤 비전, 어떤 꿈을 이루려고 그 교회에 모여 있느냐?”2.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국가나 회사나 교회나 개인이나 ‘비전’이 있어야 하고 꿈이 있어야 하는데, 그 비전은 반드시 바른 비전이어야 하고 바른 꿈이어야 합니다. 왜인가요? 빛과 어두움이 공존(共存)하고 있듯이, 이 세상에는 ‘바른 비전’과 ‘바르지 못한 비전’ 또한 공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내가 품고 있는 비전이 바른 비전인지 아닌지를 반드시 검증해 봐야 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질문을 이어갑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마 11:7,8)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들 보려고 광야로 나갔느냐?” 이 두 가지 질문은 지금 내 안에 있는 ‘비전’이 바른 비전인지 아닌지를 분별케 하는 시금석(試金石)입니다. 참된 비전, 참된 꿈, 참된 가치는 흔들리지 않죠! 상황이 어떠하든, 여건이 어떠하든, 나를 단단히 잡아 줄 수 있는 것이 ‘참된 비전’이니까요. 그래서 ‘참된 비전’은 이 땅에 있는 가치에 기초하지 않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곧바로 다음 질문을 이어가십니다.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이제 보다 명확해지죠! 좀 더 직설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리는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 보려고, 아니면 부드러운 옷 입어 보려고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드러운 옷’이 우리의 비전이 될 수는 없다는 거죠. 이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만약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우리에게 ‘부드러운 옷’을 입혀주는 것이었다면 예수님은 말구유가 아니라 헤롯궁에서 태어나셨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기억하십시다. 부드러운 옷, 세상의 높은 자리, 세상의 물질, 세상의 쾌락, 세상의 명예는 우리를 잠시 편리하고 안락하게 해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인생을 걸만한 ‘비전’은 될 수 없습니다. 이를 보다 명확히 보여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40일 동안 금식하셔서 배고픈 상태일 때, 사단은 이렇게 유혹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 4:3). 만약 육(肉)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육(肉)을 안락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비전이 될 수 있다면, 예수님은 돌을 떡으로 바꿔서 드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죠! 왜인가요? 육(肉)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니까요. 다음으로 사단은 예수님을 높은 성전 꼭대기로 데려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마 4:6). 그러면 천사들도 너를 보호하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도 너를 우러러 볼 거야!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시나요? 아니죠. 예수님은 왜 뛰어내리지 않으셨을까요? 성전 꼭대기에 올라가는 것, 세상에서 주목 받는 것, 세상에서 내 이름이 높아지는 것은 예수님의 비전도 아니고 우리의 비전도 될 수 없으니까요. 사탄은 오늘도 우리 안에 있는 원죄를 부추겨서 ‘꼭대기’에 서라고 합니다. 높아지라고 합니다. 세배대의 아들들처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아서 모든 것을 자신들 마음대로 조정하고 주무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기억하십시다. 예수님은 우리를 섬기러 오셨고,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는 ‘섬기는 자’입니다. 사단의 세 번째 유혹은 이것이었습니다.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마 4:9) 다 주겠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달콤한 제안입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사단에게 경배했나요? 경배하지 않습니다. 왜인가요?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물질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할 수 있는게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내 인생을 걸만한 비전은 될 수 없으니까요. 왜인가요? 가롯 유다를 통해 보듯이, 수많은 인생들이 물질 때문에 망가지고 말았으니까요.이렇게 우리는 예수님의 삶을 통해 명확히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 ‘참된 비전’이고, 무엇이 ‘거짓된 비전’인지. 무엇이 ‘나를 살리는 비전’이고 무엇이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비전’인지. 한때 우리는 큰 것만을 꿈 꾸던 적이 있었습니다. 숫자만을 중요하게 여겼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그런 꿈, 그런 비전은 우리를 파멸로 몰고 가는 헛된 비전임을! 물론 크기도 중요하고 숫자도 중요하고 재정의 많고 적음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우리의 ‘비전’은 될 수 없습니다. 왜인가요? 예수님은 단 한 번도 숫자나 물질이나 외적인 웅장함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셨으니까요. 오히려 예수님은 제자들이 헤롯 대왕이 40년에 걸쳐 대리석으로 지은 웅장한 예루살렘 성전을 보며 감탄하고 있을 때 이렇게 말씀하시죠.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막 13:2)3. 하나님의 비전 : 그리스도(메시아)‘앗수르’라는 나라를 통해 이 땅에 ‘제국주의’가 등장하고, 그래서 힘없고 나약하고 순진한 나라들이 하나둘 무너져가고, 다윗 왕국마저 서서히 잠식되어가고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 인류를 향한 새로운 비전, 새로운 꿈을 꾸십니다. 바로 “그리스도”(메시야)라는 비전입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사 61:1). 기원전 700년경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밝히셨던 하나님의 ‘비전’입니다. 메시아(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서 이 땅을 치유하시겠다는 계획이시죠. 그리고 오늘, 자신을 찾아온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 11:4,5)예수님은 요한의 제자들에게 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700년 전에 이사야를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비전이 지금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니까요. 우리의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꿈, 하나님의 비전이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니까요. 그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나요?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맹인이 보고, 못 걷는 사람이 걷고, 나병 환자가 깨끗함을 받고, 못 듣는 자가 듣고, 심지어 죽은 자가 살아나고 있는 일들을 통해 증명되고 있죠. 다시 말해, 예수님이 하나님이 꿈꾸셨던 ‘메시아’임이,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시겠다 약속하셨던 ‘그리스도’임이 그런 일들을 통해 확증(確證)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2천년 전, 팔레스틴, 베들레헴, 마굿간, 말구유에 떨어진 하나님의 꿈/ 하나님의 ‘비전’은 지금도 계속해서 그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 작은 한 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변화시켰고, 로마를 변화시켰고, 영국의 조상인 ‘앵글로색슨족’을 변화시켰고, 우리가 살고 있는 아메리카를 변화시켰고, 130년 전에는 우리 조국 대한민국에 떨어져 한반도를 변화시켰고, 지금은 아프리카를 변화시켜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변화시켜가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자신 있게 외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비전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만 바라보십시다. 예수님만 가슴에 품으십시다. 이를 위해 하나님이 우리를 이 자리에 모이게 하셨습니다.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나 세배대의 아들들이 추구했던 권력이나 웅장한 예루살렘이나 가롯유다가 좇았던 세상 물질이 아니라 ‘참된 비전’이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지금 이곳에 모여 있습니다.예수님만이 이 땅의 ‘참된 비전’이심이 우리를 통해 증거되기를 소망합니다. 맹인이 보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상처받은 심령들이 치유 받으며, 죽어가는 자들이 살아갈 이유와 용기를 찾는 그런 교회 되기를 소망합니다. 교회의 머리 되시는 주님이 우리를 그렇게 이끄실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 결단과 중보의 기도 1.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어가는 우리교회 되게 하소서.2. 사랑방을 통해 예수님이 이 땅의 비전임이 보여지게 하소서.3. 어려움에 처해 있는 형제자매들을 붙들어 주소서.(중보기도) * 사랑방(속회) 헌금 - 찬송 ________ 장* 헌금기도 -* 코이노니아(나눔) - 오늘 사랑방 모임을 통해 어떤 은혜와 도전을 받았나요?* 광고 – 사랑방장(속장) * 주기도문 - 다같이 첨부파일 21년 7월 - 비전1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나.pdf (106.3K) 1회 다운로드 | DATE : 2021-07-03 05:36:07 이전글21년 8월 - 비전(2) "사람" 21.07.30 댓글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